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이쇼 시대 (문단 편집) == 개요 == [youtube(MQAmZ_kR8S8)] '''大正'''.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넣으면 {{{+2 ㍽}}}. [[다이쇼 덴노]]가 재위했던 시기에 사용한 [[일본]]의 [[연호/일본|연호]]이자 시대 구분. 서력으로 [[1912년]] ~ [[1926년]]. 연호 '大正'는 <주역(周易)> 단전(彖傳) 임괘(臨卦)에 나오는 대형이정 천지도야('''{{{#green,#7fff7f 大}}}'''亨以'''{{{#green,#7fff7f 正}}}''', 天之道也 바른 것으로 크게 형통하니 하늘의 도라)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이외 후보로 덴코 (天興), 코카 (興化), 에이안 (永安), 겐토쿠 (乾徳), 쇼토쿠 (昭徳)도 있었으나 모두 탈락했다. 다이쇼 연호의 원년 1912년은 [[중화민국]]-[[대만]]의 [[민국기년]]이나 [[북한]]의 [[주체년호]]와 같다. 즉 세 연호의 해는 숫자가 같으면 같은 해를 말한다. [[대한민국|한국]]에서는 당시 [[일제강점기]] 시절이었고 [[3.1 운동]]과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문화통치를 거쳤던 시대이기도 하다. 특히 친일 성향 친목회로 알려진 '''대정친목회'''는 다이쇼의 연호에서 따온 것이다. 그 대정친목회의 회장이 바로 [[을사조약]]을 반대하였다가 변절한 탁지부 대신 [[민영기(조선)|민영기]]였다. 다이쇼 연호는 3차 후보 추천 때 등장했고 이후 1순위로 선정되었다.[* 1차로 건덕(乾徳), 영안(永安)이 추천되었으나 각하되었고, 2차로 소덕(昭徳), 천흥(天興)이 추천되었지만 역시 각하되었다. 이후 메이지 덴노의 병세가 위급해지자 추밀원 측에서도 위급한 상황을 인식하고 다시 회의를 통해 3차로 대정(大正), 흥화(興化)를 제출하는 사이 메이지 덴노가 사망하자 최종적으로 후보에 대정(大正)을 제1안, 천흥(天興)을 제2안, 흥화(興化)를 제3안으로 선정 후 마침내 대정으로 확정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